![]() 칼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개혁의 방법론을 생각한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4-03-14
도지원 목사
우리 교단(합신)의 설립목적은 개혁에 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바른 신학,바른교회, 바른 생활을 지향해 왔으며, 지금도 우리는 이러한 개혁의 3대 지표를 자주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사실이 있지는 않을까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지향하고 말해온 내용이 개혁의 방향 뿐 아니라 개혁의 방법 또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바른 신학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일까? 바른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바른 생활은 어떤 생활을 말하는 것일까? 바른 신학이 제일 앞에 놓인 이유는 바른 신학으로부터 바른 교회와 바른 생활이 나오기 때문이다. 즉 바른 신학을 떠나서는 바른 교회와 바른 생활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바른 교회는 다름 아닌 바른 신학에 기초한 교회를 말하며, 바른생활이란 바른 신학에 뿌리내린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에서 또는 신자의 생활에서 신학이 무시되는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데이빗 웰즈는 이러한 현상을 ‘신학의 실종’이란 말로 표현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가 말하는 실종은 어떤 어린 아이가 집에서 잘 놀고 있다가 한순간에 찾을 수 없게 된 것과 같은 실종이 아니다. 아무도 신학을 이런 식으로 유괴해 가지 않았다. 신학의 실종은 어린 아이가 무시되고 소홀하게 대접받고 있는 가정에서 발생한 것과 비슷하다. 애들은 집에 다 그대로 있지만, 가족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전혀 없다. 교회에서 신학의 위치도 마찬가지다. 신학은 복음 생활의 변두리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중심의 자리를 박탈당했다.” 사실상 오늘날 교회와 신자의 생활은 신학으로부터 정의되기보다 오히려 경영학이나 심리학을 빌어 정의될 때가 많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바른 신학이 바른 교회나 바른 생활보다 우선되는 이유를 말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웰즈가 말한 대로 “기독교적 실천을 일차적으로 테크닉의 문제가 아닌 진리의 문제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바른 신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우리는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어떻게 신학을 교회와 생활로 연결할 것인가 하는 개혁의 방법에 대해서도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다. 바른 교회와 바른 생활은 바른 신학이 없인 불가능하다. 따라서 바른 신학은 참된 개혁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바른 신학은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른 신학은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를 중시한다. 그러므로 참된 개혁은 성경이 말하는 교리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오늘날 특별히 중요하다. 한국 교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개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래서 개혁을 외치는 사람이나 단체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개혁의 방법이다. 분명한 것은 참된 개혁은 성경이 말하는 교리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우리의 개혁운동은 바로 깨달은 성경과 교리에 근거하고 옛것을 도로 찾는데 있다.” 존 파이퍼는 『칭의 교리를 사수하라』 라는 그의 책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우리가 911이후 짧은 순간 벌어진 현실 속에서 더욱 분명히 보는 것은 교리를 무시하는 숨겨진 습관과 승리한 실용주의의 안타까운 노출이었습니다. 놀랍게도 200년 전의 복음주의적인 정치가였던 한 영국인은 우리의 현실을 훌륭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세기에 나의 처지를 알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일생동안, 그리고 마침내는 성공적으로 아프리카 노예무역과 싸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나는 최근 그의 주저 『기독교적 관점의 실제』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책에서 윌버포스는 영국의 도덕적인 약화를 교리적인 것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윤리를 기독교 교리와 별개의 것으로 보는 치명적인 습관은 모르는 사이에 힘을 얻었다. 그리하여 기독교 고유의 교리는 점점 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어졌고, 예상했던 대로 (기독교 교리가) 도덕 체계에 생명과 양분을 공급하던 것을 상실하자 도덕체계 또한 쇠퇴하고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윌리엄 윌버포스가 보여준 개혁의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많은 공직자들이 변화하는 사회는 변화하는 사람을 요구한다고 말하지만, 윌버포스가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에 대해 가졌던 이해의 깊이를 보여 주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윌버포스에게 있어 칭의 교리와 성화 사이의 관계를 바로 이해하는 것-사적으로나 공적으로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영국의 도덕적인 개혁의 본질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 중에는 윌버포스가 보여준 개혁의 방법을 이해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많은 목사들이 양심선언을 통해 교회를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기독교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교회 개혁이 피상적인 접근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참된 개혁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보여준 것처럼 성경의 교리를 재발견할 때 일어난다. 그러므로 개혁을 목적으로 출발한 우리 교단이 교회 안팎에서 개혁의 필요성이 점증하는 이 시점에서 할 일은 분명하다.그것은 성경으로 돌아가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를 재발견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지 여러 형태의 교리 공부를 의미하지 않는다. 만일 교리적 지식이 교회와 신자의 생활로 연결되지 못한다면,우리는 자신을 검증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바른 신학은 바른 교회와 바른 생활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
||||
|
교리와부흥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로 15길 22 (신도림동) 전화 : 070-7733-7421, 팩스 : 02-2068-9191 ⓒ jesusvision.kr
|
| 칼럼 |
|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개혁의 방법론을 생각한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4-03-14
|
|||||
|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로 15길 22 (신도림동) 예수비전교회, 전화 : 070-7733-7421, 팩스 : 02-2068-9191
Copyright ⓒ jesusvision.org All Rights Reserved |